폴린단전 없는 검객 목차

무협 · 2화 / 5화 · 약 7분

제2화 손목을 꺾는 궤적

단전 없는 검객

01

손목을 꺾는 궤적

사내의 귀두도에서 뿜어져 나온 백색 진기가 사당 마당의 흙먼지를 거칠게 찢어발겼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연서진의 이마를 스치며 머리끈을 툭 끊어놓았다. 흩날리는 흑발 사이로 서진의 두 눈은 상대의 칼등이 아닌, 도신을 쥐어짜고 있는 오른쪽 손목 관절의 미세한 비틀림을 쫓고 있었다.

적의 칼날이 정수리를 쪼갤 듯 내리꽂히는 바로 그 찰나였다. 서진은 숨을 완전히 토해내며 지면을 박차지 않았다. 오히려 두 무릎을 가볍게 굽혀 지면으로 체중을 가라앉히며, 손에 쥔 흑단목검의 각도를 사선으로 눕혔다. 칼날을 맞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적의 무거운 도세가 스스로 무너지도록 궤적의 틈새를 파고드는 백운검파의 제2검식 '침수세(沈水勢)'였다.

콰아앙!

거친 진기와 낡은 목검이 맞부딪히는 순간, 귀를 찢는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목검은 부러지지 않았다. 흑단목의 단단한 결은 서진의 팔꿈치와 척추를 타고 흐르는 반탄력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진기를 옆으로 미끄러뜨렸다. 사내의 거대한 도세가 연서진의 어깨 너머 흙바닥으로 처박히며 깊은 도랑을 팠다.

"뭐, 뭣……?!"

사내가 경악하여 눈을 부릅뜬 바로 그 순간, 서진의 목검 끝이 뱀처럼 용틀임했다. 비스듬히 눕혀졌던 검신이 허공을 둥글게 그리며 회전하더니, 도손을 쥐고 있던 사내의 오른손 손목 안쪽 빈틈으로 번개처럼 파고들었다.

빠각!

둔탁하고도 서늘한 파열음이 마당의 정적을 갈랐다. 목검 끝이 관절의 연결 부위를 정밀하게 찍어 누르며 사내의 손목뼈를 단숨에 으스러뜨렸다. 내력이 실리지 않았음에도, 상대가 내리찍던 전신의 가속도와 체중이 그대로 역방향으로 꺾여 들어간 결과였다.

"크아아악! 내 손, 내 손목이!"

사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손가락의 힘줄이 일제히 풀리며 그가 쥐고 있던 묵직한 귀두도가 맥없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서진은 반보 물러서며 왼손 장법으로 허공의 칼자루를 쳐내어 사당 마당구석의 돌벽에 꽂아버렸다. 챙강, 하는 쇳소리와 함께 돌벽에 박힌 칼날이 파르르 떨렸다.

사내는 부러진 손목을 움켜쥔 채 진흙 바닥을 뒹굴었다. 뒤따라 달려들려던 흑호방 하수인 세 명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못 박히듯 굳어버렸다. 그들의 눈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내력이라곤 한 줌도 느껴지지 않는 애송이가, 삼류 무배도 아닌 조장의 손목을 나무 막대기 하나로 박살 내고 칼을 빼앗은 것이었다.

마당을 감돌던 살기가 일순간 얼어붙은 침묵으로 뒤바뀌었다.

02

물러서는 자들

툇마루 앞을 지키고 섰던 배도현의 턱이 굳게 다물렸다. 그의 손에 들린 녹슨 진검의 떨림도 멈춰 있었다. 배도현은 자신의 사제가 펼쳐낸 동작 하나하나를 머릿속에서 되짚었다. 그것은 백운검파의 문하생이라면 입문 첫날부터 질리도록 반복하는 열두 가지 기초 보법과 검식의 조합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정밀함은 배도현이 알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단전이 깨져 진기를 쓰지 못하는 대신, 상대의 호흡과 근육의 긴장, 뼈마디의 궤적을 온전히 읽어내어 힘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되돌려준 것이었다. '기본기는 내력을 담기 위한 그릇일 뿐'이라 여기며 문파의 몰락을 비관하던 배도현의 가슴 한구석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 괴물 같은 놈……!"

바닥을 구르던 흑호방 조장이 피를 토하듯 악을 썼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이전의 오만함 대신 뼈를 깎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연서진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지 않았다. 그저 흑단목검의 끝을 천천히 내리며, 굳어 있는 세 명의 하수인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사당의 문지방을 넘지 말라 경고했을 텐데."

서진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칼날보다 더 서슬 퍼렇게 흑호방 무리의 목덜미를 죄어왔다. 하수인 하나가 마른침을 삼키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들은 연서진의 뒤편에서 서늘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한 배도현의 진검을 바라보았다. 대사형 배도현의 눈빛 또한 이전의 피로와 자조를 벗어던지고, 날 선 무인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배도현이 천천히 마당으로 걸어 내려오며 녹슨 검을 비스듬히 겨누었다.

"조장을 데리고 썩 꺼져라. 백운검파의 현판이 떨어졌다고 해서 네놈들 같은 잡배들의 무덤 자리까지 내어줄 생각은 없다."

배도현의 서슬 퍼런 일갈에 하수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비명을 지르는 조장의 겨드랑이를 황급히 부축했다. 그들은 연서진이 다시 목검을 들어 올릴까 두려워하며, 부서진 사당 문짝 너머로 헐레벌떡 달아나기 시작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산길 아래로 도망치는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마당에는 오직 거친 산바람만이 맴돌았다.

서진은 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천천히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척추를 굳게 잠그고 있던 뼈마디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나며 극심한 근육통이 밀려왔다. 단전의 내력으로 신체를 보호하지 못한 채 뼈와 근육의 힘만으로 진기를 흘려낸 대가였다. 서진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서진아."

등 뒤에서 배도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칠고 투박했지만, 이전의 거리감과 체념은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

03

족자 뒤의 잠금장치

배도현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녹슨 진검을 거칠게 검집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마당으로 다가와 서진의 어깨를 툭 쳤다. 묵직한 손길 속에는 단전이 깨진 사제를 짐짝 취급했던 과거에 대한 무언의 사죄와, 방금 전 사당을 지켜낸 동문에 대한 깊은 경의가 담겨 있었다.

"사부님이 떠나시며 네게 왜 흑단목검을 쥐여주고 가셨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구나."

배도현의 입가에 씁쓸하면서도 후련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부서진 문짝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침입자들을 쫓아냈으나, 흑호방 놈들이 이대로 물러설 리 없었다. 조장이 당하고 돌아갔으니 조만간 더 많은 패거리를 이끌고 본진이 들이닥칠 터였다.

"사형, 흑호방 놈들은 단순히 사당 터를 빼앗으러 온 것이 아닌 듯싶습니다. 조장의 칼끝에는 문파를 향한 멸시 이상의 탐욕이 묻어 있었습니다."

서진의 말에 배도현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배도현은 사당 처마 밑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부님이 실종되시기 직전, 내게 신신당부하신 것이 있었다. 백운검파가 망하더라도 결코 저들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 사당 안에 숨겨져 있다고 하셨지."

배도현은 서진을 이끌고 사당 안채로 들어섰다. 부서진 문틈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이 낡은 마루바닥의 먼지를 비추고 있었다. 사당 중앙의 제단 뒤편에는 백운검파의 시조를 기리는 거대한 묵화 족자가 걸려 있었다. 세월의 때가 타 누렇게 변색된 족자에는 구름 위를 가르는 한 줄기 검선이 그려져 있었다.

배도현은 주저 없이 족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족자의 오른쪽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걷어 올렸다. 흙벽이 드러날 것이라 생각했던 서진의 눈앞에 뜻밖의 물건이 나타났다. 벽면을 파내어 정교하게 박아 넣은, 묵직한 청동과 철로 벼려진 원형의 잠금장치였다.

잠금장치 중앙에는 백운검파를 상징하는 뜬구름과 세 자루의 칼날 문양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칼날 문양의 홈 세 개 중 중앙의 홈은 깊숙이 비어 있어, 무언가 특정한 형태의 열쇠나 도구가 맞물리지 않으면 결코 돌아가지 않을 구조였다.

"이것은……?"

서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배도현이 청동 장치를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부님께서 남기신 문파의 비전 장치다. 흑호방 놈들이 혈안이 되어 노리는 것이 바로 이 족자 뒤에 감춰진 비밀이었어. 서진아, 네 목검을 이 홈에 대어 보아라."

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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