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린단전 없는 검객 목차

무협 · 5화 / 5화 · 약 5분

제5화 등을 맞댄 사투

단전 없는 검객

01

화염의 빗줄기

사당 처마 끝을 스치며 떨어진 불화살들이 마른 억새 지붕에 틀어박히자마자 사나운 불길이 치솟았다. 딱, 딱 하는 메마른 나무 타는 소리와 함께 짙은 매캐한 연기가 앞마당을 자욱하게 뒤덮기 시작했다. 밤하늘을 가르던 붉은 궤적 너머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십여 명의 검은 복면 무인들이 담장을 넘어 마당으로 미끄러지듯 내려앉았다.

단순한 건달패가 아니었다. 발소리조차 지면에 흘리지 않는 가벼운 신법과 양손에 쥔 번뜩이는 쌍단도(雙短刀)는 흑호방이 은밀히 육성한 정예 척후대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대낮에 찾아왔던 조장과는 격이 다른 서늘하고 침착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본대가 산문을 포위하기 전에 쥐새끼 둘을 베어 거름으로 삼아라! 화염 속에 사당과 함께 뼈를 묻어버린다!"

선두에 선 척후 조장이 짧게 수신호를 보내자, 좌우로 갈라진 흑복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부챗살 형태로 마당을 에워쌌다. 공기를 찢으며 날아드는 단도의 예기가 살점을 베어낼 듯 차갑게 뺨을 스쳤다. 화마가 사당 기둥을 집어삼키는 열기 속에서도 연서진의 가슴속은 오히려 얼음장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사형, 흩어지면 각개격파당합니다."

"알고 있다. 내 등 뒤는 네놈 말고는 아무도 손대지 못할 테니, 네 칼길이나 염려해라!"

배도현이 낡은 청포 자락을 휘날리며 진검을 쳐들고 연서진의 등 뒤에 정확히 어깨를 맞대었다. 쿵, 하고 맞닿은 두 사람의 등판에서 서로의 거친 심장박동과 온기가 전해졌다. 불타는 처마에서 붉은 불씨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마당 한가운데, 두 무인은 말 한마디 더 섞지 않고 각자의 전방을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02

맞댄 등과 부러진 칼길

순식간에 세 명의 척후가 낮은 자세로 파고들며 연서진의 하체를 노리고 단도를 비스듬히 찔러왔다. 내력이 담긴 칼날이 흙바닥을 가르며 푸른 검기를 뿜어냈다. 단전의 힘으로 맞받아쳤다면 단숨에 튕겨 나갔을 묵직한 기세였다. 그러나 서진은 붕대가 감긴 오른손으로 흑단목검을 비스듬히 눕히며, 무릎을 낮추고 발뒤꿈치로 마당의 흙을 굳건히 디뎠다.

석판에서 체득한 척추의 마디마디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서진은 적의 칼날을 정면으로 막지 않고, 제4식 '유운세(流雲勢)'로 목검의 옆면을 적의 칼등에 살포시 얹었다. 쇳소리와 함께 단도의 진기가 서진의 목검을 타고 미끄러지며 허공으로 빗겨 나갔다. 지면의 반작용을 골반의 비틀림으로 받아내 적의 체중을 고스란히 앞으로 쏠리게 만든 찰나였다.

"뭣이……?!"

척후의 눈이 경악으로 물든 순간, 서진의 어깨뼈가 묵직하게 회전하며 흑단목검의 끝이 적의 쇄골 아래 결손부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사내의 상체가 뒤로 꺾여 나가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서진의 오른쪽 사각지대에서 또 다른 척후가 벼락처럼 칼날을 찔러 넣었으나, 서진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챙강!

등 뒤에서 벼락같은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배도현의 녹슨 진검이 서진의 목덜미로 쇄도하던 칼날을 귀신같이 쳐내며 척후의 손목을 베어 넘긴 것이었다. 튀어 오른 피가 배도현의 뺨을 적셨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반대편에서 쇄도하는 적의 가슴팍을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척후들의 연계 살수가 두 사람의 등을 축으로 삼은 완벽한 원형 방어선 앞에서 허망하게 깨져나갔다. 단전의 내력 없이 뼈의 축으로 적의 힘을 되돌리는 서진의 정밀한 검로와, 십수 년간 문파의 진검을 벼려온 배도현의 묵직한 검격이 마치 한 몸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03

떨어진 친필 명령서

사당 마당을 채우던 거친 쇳소리가 잦아들 무렵, 바닥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일곱 명의 척후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척후 조장은 서진의 제7식 비틀어치기에 양 무릎 관절이 꺾인 채 차가운 흙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조장의 손에서 떨어진 피 묻은 쌍단도가 힘없이 흙바닥을 굴렀다.

"네, 네놈들 따위가…… 단전도 없는 버러지와 퇴물 놈이 어찌 방회의 정예를……."

조장이 거품 섞인 피를 토해내며 악을 쓰자, 배도현이 차가운 눈으로 진검의 날을 조장의 목덜미에 겨누었다. 배도현의 청포는 곳곳이 베이고 그을려 붉은 피가 배어 있었으나, 그의 기세는 산문이 무너진 이래 그 어느 때보다 서슬 퍼렇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지던 조장의 품속 옷자락이 벌어지며, 검게 그을린 가죽 주머니 하나가 마당 흙바닥으로 툭 굴러떨어졌다. 주머니 끈이 풀리며 안에서 붉은 밀랍 봉인이 찍힌 두툼한 서한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한 모퉁이에 박혀 있는 인장은 지하 석실의 찢겨 나간 선지 조각에서 보았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이마에 칼자국이 새겨진 흑호방의 핏빛 호랑이 낙인이었다.

연서진이 다가가 삼베 붕대가 감긴 손으로 그 서한을 주워 펼쳤다. 거친 붓으로 휘갈겨 쓴 글귀가 달빛과 화염의 붉은빛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다.

'백운검파의 비급 잔편을 입수했으나 그 오의가 파천결의 골격 운용에 있음을 확인했다. 그 뿌리를 아는 자들이 살아 있다면 훗날 화근이 될 터이니, 사당과 밀실을 통째로 불태워 흔적조차 남기지 말라. 지체 없이 척후를 놓아 퇴로를 끊고, 본대가 당도하는 즉시 산문을 완전히 소각하라.'

서한의 말미에는 흑호방 방주의 친필 서명이 서늘한 먹향과 함께 찍혀 있었다. 그들이 왜 비급의 핵심 잔편만을 뜯어갔는지, 왜 이 폐허 사당을 단순한 침탈을 넘어 잿더미로 만들려 했는지 모든 의문이 한순간에 풀리는 증좌였다. 놈들은 자신들이 훔쳐 간 비급의 진짜 가치를 숨기기 위해, 그리고 뼈마디의 비전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들의 결핍을 감추기 위해 백운검파의 마지막 숨통마저 끊어놓으려 했던 것이다.

"방주의 친필 명령서다. 본대가 이미 산 아래에 집결해 있단 소리야."

서진의 나직한 목소리에 배도현이 타오르는 사당 처마를 올려다보았다. 붉은 불길이 밤하늘을 집어삼키며 협곡 너머로 거대한 연기 기둥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5화 끝 · 여기까지가 폴린이 써 둔 이야기예요

6화부터는 내 이야기로 이어져요.

같은 작품을 폴린에서 열면, 인물과 전개를 내가 정한 대로 6화부터 이어 써요. 첫 회는 무료예요.

폴린에서 이어 쓰기 · 첫 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