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린검집 속의 비사 목차

무협 · 1화 / 5화 · 약 6분

제1화: 빈 처소의 서찰

검집 속의 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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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남겨진 흑칠검집

사백한의 처소 문을 밀어붙이자마자 삐걱이는 경첩 소리와 함께 서늘한 침묵이 쏟아져 내렸다. 평소 같으면 이른 아침 비검수련을 마친 제자를 맞이하며 찻물을 올리라 일렀을 스승의 기척이 방 안 어디에도 없었다. 탁자 위에는 마시다 만 식은 찻잔 하나만이 굳어 있었고, 벽면 정좌대에 걸려 있어야 할 스승의 애검은 온데간데없이 빈 흑칠 검집만이 바닥에 굴러떨어져 있었다.

진무원은 허리를 숙여 차가운 마루에 팽개쳐진 검집을 들어 올렸다. 검신이 빠져나간 칼집은 비정상적으로 가벼웠으나, 가죽 끈이 묶인 입구 안쪽에 미세하게 튀어나온 종이 모서리가 손끝에 걸렸다. 조심스럽게 안쪽을 긁어내자 붉은 밀랍으로 봉해졌던 흔적이 남은 얇은 비단 서찰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겉면에는 붓 대신 손톱 끝으로 거칠게 눌러 쓴 사문 고유의 혈인 암호 열두 자가 음각처럼 박혀 있었다.

정파 구파일방의 한 축인 청운검파에서 혈인 암호는 문파의 존망이 걸린 변고가 터졌을 때 수뇌부만이 쓰는 극비 부호였다. 장로회나 장문인에게 한마디 전언도 남기지 않은 채 홀연히 자취를 감춘 스승이, 어째서 제자의 손에 닿을 검집 밑바닥에 이런 밀서를 숨겨 두고 떠났단 말인가. 무원의 곧은 미간이 묵직하게 찌푸려졌다. 방 안의 먼지 냄새 사이로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먹 향이 희미하게 감돌았다. 스승이 이곳을 비운 지는 길어야 두 시진 남짓이었다.

무원은 서찰을 품에 넣고 문풍지 틈으로 마당을 살폈다. 이른 새벽 검술 도장에서 목검 부딪치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올 뿐, 장로원 쪽의 감시망은 아직 이 처소의 이변을 눈치채지 못한 듯 고요했다. 만약 장로회에 스승의 실종을 즉각 보고한다면, 지난달부터 스승과 날 선 대립각을 세우던 감찰각 무인들이 들이닥쳐 이 방을 샅샅이 뒤질 것이 자명했다. 스승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와 사문을 향한 충직함 사이에서, 무원의 심맥이 팽팽한 활시위처럼 굳어졌다.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었다. 적어도 스승이 남긴 이 서찰의 진의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발설해서는 안 되었다. 무원은 가슴 안쪽에 닿은 서찰의 모서리를 단단히 움켜쥐며 굳게 닫힌 창살 너머를 쏘아보았다. 장포 자락을 여미는 그의 손끝에는 사문 정통의 삼재기운이 조용히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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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빗장을 푸는 묵흔

무원은 처소 구석의 서안에 촛불을 켜고 비단 서찰을 편평하게 펼쳤다. 붉은 인주와 핏빛이 뒤섞인 글귀는 사문의 기초 검결인 청운십이식의 보법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스승 사백한의 무릎 밑에서 처음 목검을 잡고 밤낮으로 외웠던 파천무결의 첫 단락이었다. 남들은 그저 난해한 도가 경전의 자구로 보겠지만, 사백한에게 직접 검을 사사한 수제자 무원에게는 명확한 이정표였다.

'운(雲)을 밟아 산을 내려서면, 취(醉)한 달이 주막 기와에 걸린다.' 무원은 마음속으로 기경팔맥의 운기 경로를 따라 글자의 획을 하나씩 지워 나갔다. 겉으로 드러난 문장은 무협의 은어처럼 흩어져 있었으나, 세 번째 글자와 일곱 번째 글자의 획수를 합쳐 사문의 독문 암자표와 대조하자 선명한 단어가 마루 위로 떠올랐다. 천악산 기슭 아래, 강호 무인들이 드나드는 첫 관문인 운래객잔이었다.

스승은 어째서 사문의 총본산을 벗어나 속세의 객잔으로 향했는가. 문파의 계율상 장로급 고수가 허가 없이 산문을 이탈하는 것은 파문까지 이를 수 있는 중죄였다. 그러나 사백한은 문파의 규율을 누구보다 엄격하게 지키던 청운검파의 기둥이었다. 그런 스승이 제자에게만 은밀한 행로를 남기고 급히 몸을 피했다면, 사문 내부에서조차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암류가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무원은 더는 지체하지 않았다. 서안 위의 등불을 손가락 끝의 약한 탄지경으로 쳐서 끄고, 벽에 걸린 자신의 장검을 등에 둘러멨다. 푸른빛이 도는 흑색 무복의 소매를 단단히 조여 매고 품속의 서찰을 안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었다. 문파의 다른 동문들이 아침 조회를 위해 연무장으로 모여드는 지금이야말로 경비가 가장 허술한 순간이었다.

처소 뒷문을 열고 대나무 숲길로 발을 딛자 새벽이슬 머금은 찬 바람이 이마를 스쳤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조차 사문의 경신보법인 답설무흔으로 지워내며, 무원은 험준한 산세를 타고 내려갔다. 마음속에서는 장로회에 대한 의구심과 스승을 향한 깊은 염려가 파도처럼 일렁였으나, 발걸음만은 흐트러짐 없이 똑바로 산문 어귀를 겨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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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산문 어귀의 차단검

천악산의 울창한 송림을 벗어나자 청운검파의 거대한 현판이 걸린 외곽 산문이 안개 너머로 형체를 드러냈다. 평소라면 하급 무사 서넛만이 지키고 있어야 할 목책 입구에, 검은 철릭을 입은 사내 하나가 장검을 가로로 쥔 채 우뚝 서 있었다. 청운검파 감찰각의 제일 검객이자 동문들의 기강을 가차 없이 단속해 온 감찰관 배도현이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숲에서 걸어 나오는 무원의 발끝에 정확히 박혔다.

"수제자 진형, 이 꼭두새벽에 도복도 갖추지 않고 검을 찬 채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배도현의 목소리는 서리 내린 바위처럼 낮고 딱딱했다. 그의 오른손은 이미 허리춤에 찬 흑철검의 코등이를 엄지손가락으로 반 치쯤 밀어 올리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검날의 살기가 칼집 틈새로 한 줄기 번뜩였다.

무원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에게 세 보 앞까지 다가가 당당히 포권을 취했다. "사부님의 심부름으로 산 아래에 다녀올 일이 있어 나서는 길이네. 감찰관이 이른 시각부터 외곽 초소를 친히 지키고 있을 줄은 몰랐군."

"사백한 장로님의 심부름이라." 배도현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메마른 냉소가 번졌다. "공교롭게도 반 시진 전, 감찰각에 장로회의 엄명이 떨어졌습니다. 사 장로님이 처소에 계시지 않으니 그 거처를 즉시 봉쇄하고 수색하라는 명이었지요. 그런데 수제자인 진형이 스승의 심부름을 핑계로 산문을 빠져나가려 한다?"

배도현이 성큼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그의 어깨에서 뿜어져 나온 서슬 퍼런 살기가 흙먼지를 흩날렸다. 그의 왼손이 무원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사 장로님의 빈 처소에서 찾아낸 서찰이 품에 들어 있겠지요. 장로회의 명입니다. 그 서찰의 봉인을 즉시 내놓고 감찰각으로 동행해 심문을 받으십시오. 불응한다면 비록 수제자라 해도 사문의 규율로 벨 수밖에 없습니다."

배도현의 검이 칼집을 찢을 듯 쏘아져 나오며 서슬 퍼런 검선이 무원의 가슴팍을 갈라왔다. 무원은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사문 정통의 삼재기운을 두 손끝으로 모아 유려하게 뻗어내며 사문의 수기법인 청운유수로 검신의 허리를 빗겨 쳐냈다.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빗겨나간 칼날의 궤적을 틈타 무원의 손바닥이 배도현의 손목 혈도를 부드럽고도 묵직하게 제압했다. 흑철검이 땅에 떨어지며 중심을 잃은 배도현이 비틀거리는 찰나, 무원은 그의 어깨를 스쳐 지나 목책 밖으로 걸어 나갔다. 등을 돌린 채 던진 무원의 단호한 목소리가 산문에 메아리쳤다. "이 길은 사부님의 명으로 내가 연다. 감찰각은 더 이상 날 막아서지 못한다."

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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