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린검집 속의 비사 목차

무협 · 5화 / 5화 · 약 8분

제5화: 옛 검결의 낙인

검집 속의 비사

01

1장: 옛 검결의 낙인

흑영애를 휘감던 삭풍이 차츰 잦아들자, 진무원과 배도현은 벼랑 아래로 이어진 좁은 바위 굴에 잠시 몸을 숨겼다. 두 사람의 옷자락은 절벽의 칼바람에 찢겨 서릿발이 하얗게 엉겨 붙어 있었다.

무원은 거친 숨을 고르며 품 안에서 은둔 고수에게 건네받았던 낡은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냈다. 서늘한 한기가 도는 편평한 너럭바위 위에 누렇게 변색된 양피지를 조심스럽게 펼쳐 놓았다.

종이 위에는 삼십 년 전 청운검파 장로회의 직인과 하남 연가의 가주 낙관, 그리고 흑도 사파의 독문 혈인이 섬뜩할 정도로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배도현은 흑철검의 자루를 쥔 손을 미세하게 떨며 바위 앞으로 다가왔다.

"사문의 가장 오래된 검결서인 청운본결(淸雲本訣)의 자구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배도현이 떨리는 손가락으로 밀약 문서 하단의 은닉 문구를 짚으며 신음하듯 내뱉었다.

"본결의 역결(逆訣)로 적혀 있군. 겉으로는 정파의 도가 구결처럼 보이나, 한 글자씩 건너뛰어 읽으면 사파에게 흘러간 자금의 경로가 드러난다." 무원이 손끝으로 먹선의 결을 따라가며 묵직하게 덧붙였다.

배도현의 입술이 파리하게 질려 갔다. 장로회의 뜻을 사문의 정의라 믿고 감찰각의 규율을 집행해 온 그에게, 사문의 검결로 기록된 비자금 장부는 뼈아픈 파멸과도 같았다.

"사파에게 매달 상납하던 비자금의 명목이 사문 비전의 금지된 구결을 암호화하여 기록한 것이었을 줄이야.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장로회가 사파의 손을 빌려 반대파를 숙청하고 문파의 기틀을 더럽혔다는 지울 수 없는 물증입니다."

무원은 대답 대신 품속 깊숙이 보관해 두었던 차가운 흑철 패를 꺼내 들었다. 괴한들의 습격을 받으면서도 품 안에 지켜냈던 그 물건이었다.

무원은 흑철 패를 양피지의 붉은 직인 곁에 나란히 내려놓았다. 패의 표면에 깊게 파인 세 줄의 톱니형 검흔과 기괴한 문양이 드러났다. 무원이 흑철 패의 뒷면을 밀약 문서 귀퉁이에 찍힌 장로회 극비 문장 위에 맞대었다.

철컥, 하는 미세한 소리와 함께 흑철 패의 모서리가 문서에 찍힌 도장의 음각과 완벽하게 맞물렸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일치였다.

"객잔에서 우리를 습격했던 괴한들이 지니고 있던 흑철 패의 문양은 사문 밖의 것이 아니었소. 장로회가 은밀히 운용하는 직속 암살대, '영결대(影訣隊)'의 상징이오."

무원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차가운 석벽에 부딪쳐 울렸다. 그 음성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명백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흑철 패를 쥔 자들의 배후는 애초부터 하남 연가와 결탁한 우리 문파 장로회였던 것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혼자 흑영애로 향하셨고, 암살대를 제게서 떼어내려 총본산으로 몸을 돌리신 것이오."

"장로회가…… 직접 사문의 장로를 죽이기 위해 암살대를 풀었단 말입니까?" 배도현은 사문의 법도를 지켜온 자신의 삶 전체가 송두리째 부정당한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규율을 집행하던 감찰관의 고집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떨리는 동공 너머로, 바위 위에 나란히 놓인 흑철 패와 밀약 문서의 핏빛 직인만이 비정상적인 무게로 타오르고 있었다.

02

2장: 암운을 가르는 파천검

바위 굴 밖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듯 무거워졌다. 사방의 기압이 급격히 내려앉으며 수풀을 흔들던 바람마저 숨을 죽였다.

무원은 너럭바위 위의 밀약 문서를 번개처럼 낚아채 품속 깊숙이 쑤셔 넣었다. 흑철 패의 서늘한 감촉이 손바닥을 스치는 찰나, 등 뒤의 장검을 뽑아 들었다.

맑고 차가운 검명이 굴 안을 쨍하게 울리는 것과 동시에, 석벽 틈새로 대여섯 자루의 칠흑 같은 암도(暗刀)가 벼락처럼 쇄도해 들어왔다.

기습이었다. 절벽 길목의 짙은 운무를 뚫고 소리 없이 접근한 검은 복면의 괴한 여덟 명이 동굴 입구를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그들의 장포 자락 위로 방금 너럭바위 위에서 확인했던 영결대의 표식, 기괴한 흑철 문양이 번뜩였다.

"입을 열 생각도 없이 숨통부터 끊으려는 꼴이 과연 장로회의 직속 사냥개답군."

무원이 차갑게 내뱉으며 칼날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세웠다. 괴한들은 대꾸 한마디 없이 삼 면에서 흩어져 들어오며 일제히 도세를 뿜어냈다.

그들이 휘두르는 칼날은 정파의 결을 지녔으되, 끝자락마다 상대를 참혹하게 찢어발기는 혈검의 파괴적인 기형(畸形)을 띠고 있었다.

사문의 금지된 초식인 파혈참이었다. 살을 에는 흑색 도기가 연달아 터져 나오며 좁은 동굴의 암벽을 사정없이 깎아내렸다.

"사문의 규율을 집행한다는 자들이 스스로 사문의 금기를 휘두르다니!"

배도현이 분노에 찬 일갈을 내지르며 흑철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검신에서 뿜어진 검은 검광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비도 세 자루를 차례로 쳐냈다.

쇳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 메아리쳤으나, 적들의 살진은 운무처럼 질기고 촘촘했다. 비도를 날린 자객 둘이 좌우에서 교차하듯 쇄도해 들어왔다.

"물러서지 마라, 감찰관! 놈들은 청운검파의 보법을 뼛속까지 파훼하도록 훈련받았다!"

무원의 경고가 떨어짐과 동시에 정파의 검술을 사파의 잔혹한 살인귀로 변형시킨 궤적이 배도현의 옆구리 사각을 파고들었다.

배도현이 급히 흑철검을 당겨 막아섰으나, 어깨를 스친 예리한 도기가 철릭을 찢고 붉은 핏선을 그었다.

그 찰나, 무원의 신형이 바람을 가르며 벼락처럼 허공으로 솟구쳤다. 발끝으로 너럭바위를 박차는 순간, 단전의 삼재기운이 기경팔맥을 타고 검끝으로 응축되었다.

무원은 스승 사백한에게 전수받은 정통 청운삼재검의 첫 초식인 '운기무흔(雲起無痕)'을 거침없이 폭발시켰다.

푸른 검기가 거센 파도처럼 부챗살 모양으로 둥글게 퍼져 나가며 굴 입구를 가득 메운 흑색 도기를 일격에 찢어발겼다.

맑고 곧은 도가의 기운이 음습한 살기를 밀어내자, 좁은 바윗길에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적들의 진형이 허물어졌다.

앞줄에 섰던 두 자객의 도신이 반 토막 나며 피보라가 튀었다. 무원의 칼끝은 사문의 정기를 품은 채 적들의 퇴로를 매섭게 차단하고 있었다.

03

3장: 갈라진 맹세

무원의 검격에 선두의 자객 둘이 피를 뿌리며 나뒹굴자, 뒤편의 안개 속에서 거대한 기운을 뿜어내는 사내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얼굴의 반을 흉포한 철가면으로 가린 자객의 수장이었다. 그의 어깨에는 장로회의 은령(銀令)이 차갑게 매달려 있었고, 손에 쥔 중검에서는 묵직한 흑색 검강이 흉흉하게 일렁였다.

수장은 바닥에 쓰러진 부하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피 묻은 흑철검을 쥐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배도현을 똑바로 응시했다.

"감찰관 배도현. 장로회로부터 네놈이 임무를 벗어나 탈문자를 비호하고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수장의 메마른 목소리가 흑영애의 바위벽을 타고 으르렁거리듯 메아리쳤다. 절벽 틈을 파고드는 바람마저 그의 기파에 짓눌려 숨을 죽였다.

"우리는 장로회의 최종 엄명을 집행하러 왔다. 네가 존경해 마지않던 사백한은 이미 문파 총본산의 지하 감옥에 결박되어 최후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반역의 씨앗을 품은 저 수제자 놈뿐이다."

배도현의 동공이 극심하게 흔들렸다. 사백한 장로가 이미 생포되어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은 그의 심장을 비수로 찌르는 듯한 충격을 안겼다.

"사 장로님이…… 총본산 지하에 결박되었다고? 그분이 대체 무슨 죄목으로 문파의 옥에 갇힌단 말인가!"

배도현의 외침에 철가면의 사내는 냉혹한 비소를 흘리며 한 걸음 다가섰다.

"죄목은 장로회가 정하는 법이다. 사백한은 문파의 기밀을 빼돌려 사파와 내통하려 한 대역죄인으로 낙인찍혔다. 그리고 네놈은 그 반역자의 제자와 어울려 사문의 율법을 능멸했지."

"거짓이다!" 배도현이 이를 악물며 검끝을 겨누었으나, 손목을 타고 흐르는 떨림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사 장로님은 문파를 위해 진실을 밝히려 하셨을 뿐이다. 사파와 손을 잡은 것은 바로 장로회 너희들이 아니더냐!"

수장은 대답 대신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그의 품에서 붉은 인주가 번들거리는 목패 하나가 뽑혀 나왔다. 사문의 극형을 상징하는 단두의 낙인이 선명한 처형패였다.

쨍그랑!

수장이 던진 처형패가 차가운 암반 바닥을 구르며 배도현의 신발 코앞에 멈추어 섰다.

"배도현, 감찰각에 입문할 때 사문의 신단 앞에서 바쳤던 맹세를 기억하라. 문파의 규율을 어긴 반역자 진무원을 네 손으로 즉결처형하고, 놈이 빼돌린 문서를 회수해 본산으로 복귀하라."

쇠붙이가 긁히는 듯한 목소리가 서슬 퍼렇게 귓전을 파고들었다.

"이것이 장로회가 네게 내리는 마지막 속죄의 기회다. 장로회는 아직 네 충심을 온전히 버리지 않았다. 지금 즉시 칼을 돌려 저 배신자의 숨통을 끊어라."

수장의 묵직한 중검이 무원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불응한다면 너 또한 사문을 배신한 역적으로 간주해 즉시 목을 벨 것이다. 선택하라, 감찰관. 사문의 충복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반역자의 칼에 베여 이 낭떠러지의 시체로 썩어갈 것인가."

배도현의 호흡이 거칠게 부서져 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붉은 처형패는 감찰관으로서 그가 평생을 바쳐 지켜온 율법의 실체였다.

그러나 그 율법의 배후에 똬리를 튼 것은 정의가 아닌 삼십 년 묵은 추악한 기만이었다. 배도현의 시선이 핏빛 처형패에서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옆자리에는 등을 곧게 펴고 장검을 비스듬히 쥔 채, 아무런 변명도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진무원의 맑고 굳은 눈빛이 서려 있었다.

사문의 허울 좋은 맹세와 눈앞에 드러난 협의의 갈림길에서, 배도현의 칼자루를 쥔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5화 끝 · 여기까지가 폴린이 써 둔 이야기예요

6화부터는 내 이야기로 이어져요.

같은 작품을 폴린에서 열면, 인물과 전개를 내가 정한 대로 6화부터 이어 써요. 첫 회는 무료예요.

폴린에서 이어 쓰기 · 첫 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