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린잔류 조작의 재난 구조선 목차

현대 판타지 · 1화 / 5화 · 약 7분

1화. 통제선 너머의 신호

잔류 조작의 재난 구조선

01

제1장: 철수 명령과 남겨진 파동

지하 2층 환승 통로를 집어삼킨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사이렌이 지상까지 찢어발겼다. 귓전을 때리는 경보음에 섞여 민간 구조대원들이 들것을 접고 노란 통제선 밖으로 황급히 쏟아져 나왔다. 탐지반장이 무전기를 쥔 채 마른침을 삼키며 붉은 깃발을 내리꽂았다.

"지하 3층 지반 지지력 상실! 생체 반응 제로다! 전원 즉각 철수해! 발파 카운트 들어간다!"

철수 신호탄이 솟구치는 소음 속에서 강도진은 멈춰 섰다. 잿빛 방진 점퍼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손을 천천히 빼내 허공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의 시야에 겹쳐진 세상은 남들과 달랐다. 콘크리트 먼지와 유독가스 사이로 희미하게 떠도는 청록색의 뒤틀린 실타래, 이미 지나가 버린 사람들의 움직임이 공간에 남긴 마나의 미세한 잔류물이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렸다.

살아 있는 사람이 호흡하고 발버둥 친 흔적이 선명했다. 공인 구조대의 광역 생체 탐지기는 두터운 암반과 붕괴 잔해에 가로막혀 멎어 버렸지만, 허공에 긁힌 공간 왜곡의 결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지하 3층 배전실 우측 벽면, 상판이 무너지기 직전 밀려난 공기가 만든 잔류 파동이 일정한 주기로 떨리고 있었다. 세 명. 아니, 얕은 호흡까지 합치면 최소 네 명의 잔류 흔적이 흩어지지 않고 모여 있었다.

"저기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에어포켓이 형성됐어요."

도진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통제선을 넘어서며 입을 열었다. 진입 차단선 중앙에서 무전 통제를 맡고 있던 현장 관리인 서하은이 굳은 표정으로 걸어 나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눌러쓴 기동 헬멧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가 도진의 허름한 장비와 가슴팍에 달린 F급 보조 각성자 인식표를 빠르게 훑었다.

"물러서세요. 탐지반 공식 판정이 끝났습니다. 지하 3층은 5분 내로 전면 함몰됩니다. 지금 들어가면 자살행위예요."

"공식 탐지기는 벽 너머를 못 보잖습니까. 3번 환승 통로 끝, 바닥에 남은 질량 변위 흔적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억류된 공기층 속에서 잔류 신호가 진동하고 있어요."

"공간 잔류 감지 따위로 매몰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는 건 협회 공인 매뉴얼에도 적혀 있습니다. 현장 지휘권을 침해하지 말고 당장 대피 구역으로 이동하십시오, 강도진 씨."

서하은은 차갑게 쏘아붙였지만, 손에 쥔 기록 단말기를 든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도진이 읊은 위치는 10분 전 구조대가 마지막으로 교신을 시도하다 통신이 두절되었던 지점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무런 측정 장비도 없이 허공을 매만진 것만으로 짚어낼 수 있는 좌표가 아니었다.

02

제2장: 무너지는 계단과 왜곡의 결

도진은 하은의 경고를 향해 변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시간에 숨은 끊어진다. 그는 어깨를 스쳐 지나치며 통제선 테이프를 끊어 내고 지하 계단을 향해 몸을 던졌다.

"강도진 씨! 멈춰요!"

뒤편에서 하은의 다급한 고함과 함께 진압봉을 움켜쥔 경비 요원 둘이 쫓아붙으려 했으나, 도진의 발걸음은 이미 부서진 에스컬레이터의 뒤틀린 철골 틈새를 미끄러지듯 통과하고 있었다. 뒤틀린 계단참에 발이 닿는 순간, 도진은 오른손을 허공에 휘둘렀다. 찰나의 순간 그가 지나온 궤적을 따라 미세하게 떠돌던 대기의 잔류 압력이 엉키며 얇은 공간의 막을 형성했다. 추격하려던 요원들의 발이 보이지 않는 끈적한 저항감에 엉키며 계단 난간을 붙잡고 헛디뎠다.

이것이 그가 가진 능력의 본질이었다. 이미 벌어진 사건과 지나간 움직임이 허공에 남긴 찌꺼기를 붙잡아 비트는 기술. 파괴적인 화력도, 단단한 방어벽도 되지 못해 협회에서는 쓸모없는 잡기술이라 낙인찍었던 폐기물 수준의 감각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서지고 뒤섞인 재난 현장에서는 달랐다.

지하 2층에 도달하자 유독가스와 뿜어져 나온 냉각수가 뒤엉켜 시야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천장의 콘크리트 보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금을 긋고 있었다. 균열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던전 특유의 마력 침식 반응이 지반을 녹여 내리며 굉음을 토했다.

도진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시각을 차단하자 오히려 공간의 상처들이 선명하게 번쩍였다. 무너진 천장재가 낙하하며 밀어낸 궤적, 겁에 질려 도망치던 사람들의 거친 발걸음이 허공에 새겨 놓은 마나의 결이 그물망처럼 드러났다. 그 모든 흐름의 끝자락이 지하 3층 배전실 앞, 거대한 붕괴 잔해 더미 아래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쿵! 콰르릉!

머리 위에서 거대한 콘크리트 상판 하나가 중심을 잃고 수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무게만 족히 수 톤에 달하는 질량 덩어리였다. 피할 공간은 없었다. 통로는 이미 양옆이 무너진 철근으로 막혀 있었고, 계단 위로 물러서기엔 너무 늦었다.

도진은 물러서는 대신 허공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방금 전 상판이 뜯겨 나가며 남긴 공간의 단절면, 그 날카로운 마찰의 잔류물을 손가락 사이에 걸어 쥐었다. 손끝이 찢어지는 듯한 마력 반동이 혈관을 타고 번졌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손목을 틀었다. 허공에 남겨졌던 마찰 궤적이 강제로 비틀리며 낙하하는 상판의 측면에 찰나의 편차를 만들어 냈다.

스쳐 지나가는 충격파와 함께 거대한 상판이 도진의 코앞 10센티미터를 빗겨 나가 바닥에 처박혔다. 굉음과 함께 바닥이 꺼져 내리며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틈새가 벌어졌다.

03

제3장: 어둠 속의 에어포켓

상판이 바닥을 뚫고 내려앉으며 생긴 틈새 너머로, 도진이 읽어냈던 잔류 파동의 진원지가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 3층 승강장 구석, 완전히 구겨진 변전 설비와 두꺼운 방화벽이 맞물려 기적적으로 버텨낸 삼각 형상의 에어포켓이었다.

도진은 망설임 없이 균열 사이로 뛰어내렸다. 무릎을 굽혀 착지 충격을 흘려보내자, 매캐한 연기 속에서 희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살려… 주세요… 쿨럭!"

깨진 형광등 불빛 아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웅크린 조난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리를 다친 중년 남성과 그의 품에 안겨 바들바들 떠는 청년, 그리고 벽을 짚고 겨우 호흡을 유지하던 역사 직원까지 넷이었다. 도진의 손끝에 닿았던 잔류물의 수와 정확히 일치했다. 붕괴 상판이 틀어지며 낙석이 엉뚱한 방향으로 쏟아진 덕에 이들이 갇힌 틈새는 아직 완전히 짓눌리지 않은 상태였다.

"움직이지 마세요. 공간 잔류물로 낙석 하중을 분산시키고 있습니다. 통로를 확보할 테니 천천히 기어 나오십시오."

도진이 주변에 흩어진 파쇄 파편들의 낙하 궤적을 얽어매며 임시 지지대를 형성했다. 허공에 매달린 듯 삐걱거리던 콘크리트 조각들이 잔류 장력에 묶여 간신히 멈춰 섰다. 역사 직원이 떨리는 눈으로 도진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

"구조대가… 다 철수한 줄 알았습니다. 계단이 전부 무너졌는데 어떻게 내려오신 겁니까?"

"아직 길은 남아 있습니다. 지체할 시간 없으니 앞사람 어깨 잡고 나오세요."

도진이 손을 내밀어 잔해 밑에 깔려 있던 조난자의 손을 맞잡으려던 찰나였다. 에어포켓 뒤편, 지하철 선로 쪽으로 이어지는 짙은 어둠 속에서 축축하고 끈적한 마찰음이 울렸다.

치이익, 스르륵.

단순한 돌가루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도진의 감각망 가장자리에 기괴하게 응집된 악의적인 마나의 잔류 궤적이 물결치듯 솟구쳐 올랐다. 역사 내부의 먼지와 피비린내를 집어삼키며, 칠흑 같은 터널 안쪽에서 불길한 붉은 안광 두 쌍이 천천히 번뜩였다.

던전화된 승강장의 붕괴 틈새를 둥지 삼아 내려앉은 포식형 마물이었다. 날카로운 갈퀴가 무너진 레일을 긁어내며 에어포켓의 얇은 잔해 벽을 향해 소리 없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조난자의 떨리는 손끝 너머로, 마물의 긴 꼬리가 허공을 가르며 살기를 뿜어냈다.

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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