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린검집 속의 비사 목차

무협 · 3화 / 5화 · 약 6분

제3화: 어둠 속의 도기

검집 속의 비사

01

1장: 기경팔맥(氣經八脈)의 역류

지하 창고의 공기는 칼날이 부딪치며 튀기는 쇳내와 칠흑 같은 도기(刀氣)로 순식간에 메워졌다. 세 명의 괴한이 뿜어내는 기운은 거칠고 탁했으나, 그들이 펼쳐내는 연환 참격은 소름 끼칠 정도로 정밀했다. 좌측에서 비수가 사각을 파고들고, 우측의 사슬낫이 무원의 퇴로를 옭아맸으며, 정면의 장도가 정수리를 쪼갤 듯 내리꽂혔다. 그 궤적 하나하나는 청운검파의 삼재검법이 지닌 흐름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사문의 초식을 온전히 펼치려 할수록 적들의 날카로운 칼날이 길목을 미리 가로막았다. '이것은 단순한 살수가 아니다. 우리 문파의 기식과 보법을 뼛속까지 연구해 파훼하도록 짜인 결진(結陣)이다.' 무원의 미간이 서늘하게 굳어졌다. 검신에 실었던 청운검기가 상대의 암수에 걸려 흩어지려는 찰나, 무원은 억지로 검초를 완성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숨을 깊게 들이쉬며 단전의 내력을 기경팔맥의 이맥(異脈)으로 역류시켰다.

정통 도가의 순행 운기 대신 음양의 균형을 비틀어 충맥(衝脈)과 대맥(帶脈)을 단숨에 관통하는 파격적인 운용이었다. 스승 사백한이 생전 '정형에 갇힌 검은 사도(邪道)의 변칙에 부러지기 쉽다'며 제자에게 가르쳤던 유연한 심법의 변용이었다. 무원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일순간 멎는가 싶더니, 장검의 날을 따라 응축된 순백의 경력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검끝이 빗겨 나가며 허공을 가르자, 정면을 짓누르던 흑색 도기가 거울 깨지듯 산산조각이 났다.

"크윽! 청운검파의 검결에 어찌 이런 파혈(破穴)의 기운이……!"

정면의 괴한이 피를 토하며 뒤로 세 보 물러섰다. 충돌의 반동으로 그의 찢어진 소매 안쪽에서 은빛으로 수놓인 매화 문양의 패용(佩用) 견식이 살짝 드러났다. 그 문양을 눈에 담은 무원의 동공이 날카롭게 떨렸다. 정파 오대세가 중 하나인 하남 연가(燕家) 무사들이 사용하는 독문 견장이었다. 정파의 명문세가가 어째서 정통 도문인 청운검파의 무공을 파훼하는 살수를 길러내어, 스승의 흑철 패를 강탈하려 든단 말인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잔존한 두 명의 칼날이 다시금 무원의 숨통을 노리고 쇄도했다.

02

2장: 어둠을 가른 흑철검

쇄도하는 두 개의 칼날이 무원의 장포를 베어 넘기려던 찰나, 지하실 입구의 두터운 목재 기둥이 우지끈 부러지며 벼락같은 검명이 울렸다. 차갑고도 엄정한 흑색 검선이 허공을 갈라 침입자들의 허리춤을 정확히 쳐냈다. 맑고도 서늘한 파공음과 함께 두 괴한의 칼날이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감찰각의 검은 철릭을 걸친 배도현이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흑철검에서는 묵직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산문에서 무원을 추적하겠다 선언했던 그가, 운래객잔의 암투를 감지하고 때를 맞추어 지하 창고로 난입한 것이었다. 배도현은 튕겨 나간 적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흑철검을 가로로 비껴 쥐며 무원의 곁에 등을 대고 섰다.

"수제자 진형, 감찰각의 눈을 피해 도망쳐 온 곳이 고작 이런 삼류 살수들의 함정이었습니까."

배도현의 냉랭한 목소리에는 숨 가쁜 기색이 섞여 있었으나 검끝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무원은 장검을 거두지 않고 낮게 읊조렸다. "함정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남기신 실마리다. 보아라, 저들이 지닌 패용 견식을. 단순한 사파 무리나 장물아비의 적이 아니다."

배도현의 시선이 바닥에 나뒹구는 괴한의 옷자락 끝 은빛 매화 문양에 닿았다. 감찰관으로서 수많은 세력의 표식을 섭렵해 온 배도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문양이 뜻하는 바를 그 역시 모를 리 없었다. 정파의 기둥이라 불리는 명문세가의 사병들이 사문의 장로를 쫓고 있다는 사실은, 감찰각의 율법으로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거대한 균열이었다.

"감찰관, 아직도 내가 사문을 배신하고 도주했다고 생각하나. 진실을 밝히려면 이들을 살려 배후를 캐내야 한다."

배도현은 대답 대신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사문의 규율을 집행해야 하는 감찰관과 산문을 무단이탈한 수제자 사이에 묵직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닥쳐온 현실의 위기 앞에서 두 사람의 칼날은 이미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배도현이 발을 굴러 도주하려던 괴한의 무릎을 검자루로 후려쳤다. 뼈가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지하실 바닥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두 동문 무인은 말없는 눈빛 교환만으로 암묵적인 동행의 조약을 맺고 있었다.

03

3장: 절벽으로 향하는 궤적

지하실 바닥에 무릎을 꿇린 채 포박된 괴한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품속에서 숨겨둔 독환을 삼키려던 찰나, 배도현의 신속한 점혈술이 그의 턱관절과 전신 기혈을 굳혀버린 덕에 자결은 실패로 돌아갔다. 흑철 패를 품에 갈무리한 무원이 피 묻은 칼자루를 괴한의 쇄골에 들이대며 서늘하게 물었다.

"사백한 장로님을 어디로 몰아넣었느냐. 하남 연가가 사문의 검을 표적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이냐."

괴한은 일그러진 얼굴로 조소를 흘렸으나, 무원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삼재기운이 견정혈(肩井穴)을 무자비하게 압박하자 이내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뼈가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 괴한의 오만하던 눈빛이 공포로 물들기 시작했다.

"말…… 말하겠다! 우리는 그저 명을 받고…… 흑철 패를 회수한 뒤 사백한을 유인하려 했을 뿐이다!"

"유인하다니, 어디로 말이냐."

"천악산 서편, 흑영애(黑影崖)의 천 길 절벽이다……! 그 절벽 꼭대기 동굴에 삼십 년 전 종적을 감춘 은둔 고수가 숨어 있다. 장로가 그자의 손에 떨어지도록 길을 몰았다……!"

괴한의 자백에 무원과 배도현의 시선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쳤다. 흑영애는 험준한 지형과 살인적인 운무 탓에 강호 무인들조차 발을 들이지 않는 금역(禁域)이었다. 그곳에 홀로 숨어 사는 은둔 고수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스승이 그 위험천만한 절벽으로 유인당했다는 사실은 심상치 않은 과거의 원한을 암시하고 있었다. 스승이 굳이 검집에 혈인 암호를 남겨 흑철 패를 찾게 한 것도, 흑영애로 향하기 전 반드시 확보해야 할 증거였기 때문일 터였다.

"절벽에 머무는 그 은둔 고수가 대체 사부님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무원이 다그쳐 물었으나 괴한은 공포에 질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건 모른다…… 다만 그 노인은 청운검파라면 이를 갈며 증오한다는 것밖에는……!"

배도현이 흑철검을 갈무리하며 낮게 읊조렸다. "흑영애라. 진형, 이제 장로회에 보고하고 지원을 기다릴 여유는 없습니다. 당장 절벽으로 가야 합니다." 무원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괴한을 기절시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승이 남긴 흑철 패의 차가운 감촉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진실은 사문의 규율 너머, 험준한 절벽의 안개 속으로 두 사람을 이끌고 있었다.

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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