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린이면의 규칙 수호자 목차

판타지 · 3화 / 5화 · 약 6분

3화. 거점의 그림자

이면의 규칙 수호자

01

1장. 거점의 기록관

제단에 박혀 있던 오염된 단도를 손수건으로 감싸 수습한 아서는 이현을 이끌고 결사의 은밀한 전진 거점으로 향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현실의 도심 지하철 환승 통로 깊숙한 관리 구역 아래에 겹쳐진 방형의 석실이었다. 둔탁한 철제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들과 기계식 태엽 장치들이 묵직한 마찰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사방에 매달린 백열등은 현실의 전기가 아닌, 유리관 속에서 미세하게 박동하는 청백색 광석의 힘으로 빛을 내뿜었다.

아서는 탁자 위에 단도를 내려놓고 코트 안주머니에서 놋쇠 돋보기를 꺼내 들었다. 칠흑 같은 점액이 굳어붙은 칼날 위로 푸른빛 전류가 희미하게 튀었다.

"본부 기록관에 연결된 보관함입니다. 초대장의 고유 등록 번호를 대조하면 발신 주체를 특정할 수 있습니다."

아서의 말에 이현은 가슴팍에서 조심스럽게 푸른 인광의 초대장을 꺼냈다. 거점의 차분한 공기 속에서도 편지 표면의 기하학적 문양은 여전히 살아 숨 쉬듯 미세한 진동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현이 초대장을 중앙 제어대의 홈에 올려놓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황동 원판이 회전하며 서고 한구석에서 낡은 서류철 하나가 튀어나왔다.

아서는 서류철의 붉은 밀랍 인장을 뜯어내며 종이를 빠르게 훑어내렸다. 그의 눈빛이 서서히 짙은 충격으로 물들었다.

"이 초대장은 결사의 공적 심사를 거쳐 정식 발행된 물건이 아닙니다. 이면 균열의 확산을 관측하던 최상위 감시관의 개인 인장…… 침식의 특이점을 감지하는 자를 찾아내기 위해 외부로 직접 투척된 비공식 지명장입니다."

"비공식 지명장이라고요?"

"공간의 어긋남을 감각으로 짚어내는 선천적 관측자를 찾기 위해 감시관이 급히 발송한 겁니다. 그리고 그 감시관은 바로 3일 전, 폐역사 균열의 붕괴를 막으러 간 뒤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아서는 서류에 찍힌 은빛 인장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 하필 평범한 빌라 우편함에 그런 기이한 편지가 꽂혀 있었는지, 왜 평소 골목길 균열의 각도를 읽던 이현의 눈이 필요했는지가 비로소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감시관은 이미 현실로 침식이 쏟아져 나오는 징후를 읽고, 규칙을 해석할 수 있는 자를 다급하게 부른 것이었다.

"결국 이 편지는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SOS였군요."

이현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아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탁자 위에 놓인 오염된 단도의 칼날에서 검붉은 기운이 스멀거리며 피어올랐다.

02

2장. 폐역사로 향하는 선로

거점의 벽면에 걸린 대형 도면 위에 붉은 경고등이 요란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도심 외곽, 십 년 전 폐쇄된 구 시가지 지하철 노선의 왜곡 수치가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감시관이 마지막으로 향했던 바로 그 좌표였다.

아서는 벽면의 거치대에서 황동 외피가 둘러쳐진 휴대용 나침반과 방호 장비를 챙겼다. 그는 이현에게 허리춤에 찰 수 있는 튼튼한 가죽 벨트와 규칙 관측용 렌즈를 건넸다.

"이제부터 가는 곳은 초입의 폐허와는 격이 다릅니다. 공간의 위상 자체가 뒤틀려 있어, 한순간이라도 방향 감각을 잃으면 그대로 영원한 틈새로 추락합니다."

"당신이 길을 열고 괴물을 막는 동안, 전 바닥의 왜곡 각도를 읽겠습니다. 방금 전 제단으로 갈 때처럼요."

이현이 관측 렌즈를 주머니에 넣으며 담담하게 말하자, 아서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냉랭하고 사무적이기만 하던 그의 태도에 뚜렷한 동료의식이 깃들어 있었다.

"좋습니다. 내 등 뒤는 당신에게 맡기죠. 대신 한 발짝이라도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마십시오."

두 사람은 거점의 비상구를 빠져나와 칠흑 같은 폐선로의 터널로 진입했다. 현실의 지하철 선로는 차가운 철과 콘크리트 냄새가 나야 했지만, 이곳의 공기는 타는 듯한 유황 냄새와 축축한 곰팡이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선로 바닥에 깔린 자갈들은 이미 현실의 돌이 아니었다. 보랏빛 광채를 머금은 결정들이 가시덤불처럼 솟구쳐 있었고, 낡은 침목들은 기괴한 각도로 뒤틀려 있었다.

이현은 렌즈를 꺼내 눈가에 대고 전방을 응시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 입자조차 한 방향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서 씨, 전방 15미터 지점의 선로가 끊겨 보이지만 허상입니다. 공간이 접혀 있어요. 실제 디딤돌은 왼쪽 벽면의 배수관 라인입니다."

"확인했습니다."

아서는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치며 은빛 파동을 전방으로 쏘아 보냈다. 파동이 허공에서 꺾이며 이현이 말한 배수관 라인을 따라 선명한 길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말 한마디를 낭비하지 않은 채 완벽한 호흡으로 왜곡된 터널을 돌파해 나갔다. 아서는 틈새에서 기어 나오는 소형 그림자 변종들을 지팡이의 전류로 신속하게 쳐냈고, 이현은 다음 발을 디딜 안전한 결을 끊임없이 짚어냈다.

03

3장. 굳어버린 탐색자

터널의 끝에 다다르자 광활한 지하 승강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장은 무너져 내려 거대한 자줏빛 균열이 하늘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고, 승강장 중앙의 철로 위에는 멈춰 선 녹슨 전동차가 반쯤 허공에 뜬 채 기울어져 있었다. 왜곡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중력의 뒤틀림 탓에 허공에는 쇳조각과 콘크리트 파편들이 느릿하게 부유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왜곡이라니…… 자연 발생한 균열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농도입니다."

아서가 지팡이를 꽉 쥐며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지팡이 끝의 은빛 장식이 공명음을 내며 사납게 떨렸다.

이현은 승강장 플랫폼과 선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시선을 던졌다. 바닥에 새겨진 공간의 결이 마치 소용돌이의 중심처럼 한곳으로 짓눌려 엉켜 있었다. 그 엉킨 선들의 한가운데, 멈춰 선 전동차 앞머리 바로 아래에 무언가가 우뚝 서 있었다.

"잠깐만요, 아서 씨. 저기 사람이 있습니다."

이현의 낮고 긴박한 외침에 아서의 시선이 선로 위로 꽂혔다.

두 사람은 자줏빛 안개를 가르며 선로 위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짙은 회색 제복을 입은 결사 대원 한 명이 선로 한가운데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는 인간의 온기를 전혀 풍기지 않았다.

그의 무릎 아래는 이미 선로의 강철 레일과 하나로 융합되어 거무스름한 금속질 결정으로 굳어버린 상태였다. 가슴팍까지 기어오른 보랏빛 균열은 그의 살갗을 돌처럼 딱딱하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허공을 향해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움켜쥐려던 자세 그대로 석화되어 멈추어 있었다.

"결사의 대원입니다…… 왜곡의 핵에 직접 닿아 공간에 반쯤 동화되어 버렸군요."

아서의 목소리가 억눌린 분노와 참담함으로 가늘게 떨렸다. 살아있는 채로 공간의 일부가 되어 굳어버린 대원의 텅 빈 눈동자는 허공의 거대한 균열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이현은 소름이 돋는 팔을 쓸어내리며 대원의 굳어버린 손끝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굳어 석조 조각상이 되어버린 그의 손가락 바로 아래, 강철 선로 틈새에 피로 물든 작은 기록 수첩 하나가 단단히 끼워져 있었다.

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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